바야모 행진곡
최근 수정 시각: (5년 전)
분류
1. 개요 [편집]
쿠바의 국가. 직역하면 '바야모의 노래'가 맞지만, 행진곡 풍의 음악 때문에 '바야모 행진곡'으로 의역되기도 한다. 스페인의 압제에 쿠바인들이 저항하면서 시작된 '10년 전쟁'이 한창이던 1868년에 페드로 (또는 페루초) 피게레도(Pedro(Perucho) Figueredo, 1818-1870)가 작사/작곡했다. 다만 멜로디는 그 전 해였던 1867년에 만든 것을 그대로 썼고, 쿠바 독립군이 스페인 측의 거점이었던 바야모 병영을 점령한 것을 자축하고자 여섯 절 짜리 가사를 붙여 완성했다.
피게레도는 1870년에 스페인군에 붙잡혀 반역죄로 총살형에 처해졌고 이 곡도 금지곡이 되었지만, 이후에도 민중가요처럼 독립군에 의해 계속 애창되었다. 1898년에는 안토니오 로드리게스 페레르(Antonio Rodríguez Ferrer, 1864-1935)가 팡파르 풍의 기악 서주를 붙였고, 1902년에 쿠바가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하면서 동시에 국가로 채택되었다. 다만 이 때는 너무 스페인까 성향이 짙고 장황하다는 이유로 4~6절을 뺀 1~2절 만이 채택되었고, 이후 1959년에 피델 카스트로가 이끈 혁명군이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정권을 무너뜨린 뒤에도 계속 국가로 사용되고 있다.
아르헨티나 국가처럼 각 절마다 다른 음악을 쓰는 통절 형식을 취하고 있다.하지만 길이는 훨씬 짧다 치열한 독립 전쟁 중에 만들어진 곡인 만큼 라 마르세예즈나 의용군 진행곡처럼 가사가 꽤 호전적이다.
피게레도는 1870년에 스페인군에 붙잡혀 반역죄로 총살형에 처해졌고 이 곡도 금지곡이 되었지만, 이후에도 민중가요처럼 독립군에 의해 계속 애창되었다. 1898년에는 안토니오 로드리게스 페레르(Antonio Rodríguez Ferrer, 1864-1935)가 팡파르 풍의 기악 서주를 붙였고, 1902년에 쿠바가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하면서 동시에 국가로 채택되었다. 다만 이 때는 너무 스페인까 성향이 짙고 장황하다는 이유로 4~6절을 뺀 1~2절 만이 채택되었고, 이후 1959년에 피델 카스트로가 이끈 혁명군이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정권을 무너뜨린 뒤에도 계속 국가로 사용되고 있다.
아르헨티나 국가처럼 각 절마다 다른 음악을 쓰는 통절 형식을 취하고 있다.
2. 스페인어 가사 [편집]
¡Al combate, corred, Bayameses!, Que la patria os contempla orgullosa; No temáis una muerte gloriosa, Que morir por la patria es vivir. En cadenas vivir es vivir en afrenta y oprobio sumido, Del clarín escuchad el sonido; ¡A las armas, valientes, corred! 스페인어 가사 번역 무기를 들어라 바야모의 사내들아! 조국이 그대들을 자랑스레 지켜보고 있으니. 영광스런 죽음을 두려워 말라, 순국은 곧 영생이다. 사슬에 묶여사는것은 불명예와 치욕으로 사는 것이니, 클라리온(나팔의 일종) 소리를 들어라. 용감한 자여, 서둘러 전장으로! |
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-NC-SA 2.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.
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,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.
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.
접두어의 N: - 나무위키 사용자, R: -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.
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.